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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감성돔식해 정도는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가자미식해는 함경도 음식인데 한국전쟁으로 강원도로 피난을 온 함경도 사람들에 의해….”가자미식해를 다루는 방송에서 늘 듣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음식 스토리가 우리 사회와 국가에 영향을 줄 일은 없고, 따라서 내용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고 즐기듯, 음식 스토리는 듣고 즐기면 그만입니다. 가자미식해를 먹는 자리에서 누군가 제게 가자미식해 이동설을 말하면 저는 가자미식해 이동설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음식은 사람에 묻어 움직이는 것이 맞습니다. 짜장면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은 짜장면을 먹는 중국인이 우리 땅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인간은 비슷한 환경에 비슷한 재료가 있으면 비슷한 음식을 해서 먹기도 합니다.식해란 어떤 음식인가부터 생각해봅시다. 생선을 맛있게 먹기 위해 식해 조리법이 탄생했을까요? 식해는 발효를 이용한 조리법인데, 발효는 음식 보관의 한 방법으로 인간 문명에 편입된 미생물 활동이라는 자연 현상입니다. 계절에 따라 한꺼번에 많이 잡히는 생선을 오래도록 보관하여 먹으려고 식해를 담갔습니다.식해류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아시아 전역에 두루 존재합니다. 중국 문헌에 보이는 식해류가 이르기는 하나, 문헌에 처음 나타났다고 중국에서 비롯한 음식이 아시아 전역으로 번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시아 각지에서 생선 보관법의 하나로 식해류가 제각각 선택되었을 수도 있습니다.식해 담그는 법을 보면 (요즘은 양념 때문에 복잡해 보이지만) ‘조리의 골격’은 단순합니다. 생선+소금+곡물입니다. 이 정도의 로우테크는 ‘선진지의 전파’ 없이 스스로 얻어낼 수 있을 만한 지능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하지는 않습니다. 아래는 1700년대 초의 간행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조리서 ‘주방문’에 적혀 있는 식해 조리법입니다. 고춧가루와 생강, 마늘 등의 양념이 없습니다.“고기를 비늘 긁어내고 배를 타서 깨끗이 씻어 간을 맞게 한다. 간이 들거든 널(=나무판) 위에 짚을 깔고 고기를 펴고 또 짚 깔고 널로 눌러 내리눌러 두었다가 백미로 밥을 무르게 지어 소금을 알맞게 섞어 넣는다. 대나무 껍데기를 깔아 돌로 내리눌러서 물을 부어 그늘에 두고 물을 자주 갈아 스무하루 후에 써라. 끓여서 식은 물을 넣으면 더욱 좋다. 빨리 쓰려거든 밀가루를 넣어라. 추운 때는 물을 붓지 말고 따뜻한 데 두어라.” (‘주방문·정일당잡지 주해’, 백두현)그냥 ‘고기’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생선으로 식해를 담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현재에도 식해로 쓰이는 생선은 실로 다양합니다. 명태, 도루묵, 멸치, 성대, 갈치 등등 온갖 생선을 식해로 담급니다. 1803년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에는 감성돔식해가 등장합니다. ‘우해이어보’는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2년 앞서는 어보입니다. 우해는 지금의 경남 창원시 진동 앞바다입니다. 김려가 진동으로 귀양을 가서 그곳의 어민 생활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조리법을 줄여서 옮깁니다.“가을이 지난 뒤 이곳 사람들은 감성돔을 잡아… 감성돔 200쪽을… 멥쌀 한 되로 고두밥을 찐 뒤 잘 식혀서 소금 두 국자를 넣는다. 잘 뜬 누룩과 엿기름을 가늘게 갈아서 즉각 한 국자씩 넣고 골고루 섞어 둔다. …푹 삭기를 기다려 먹는다. 그 감미로운 맛은 물고기 식해 중에 제일이다.”(‘최초의 물고기 이야기: 신우해이어보’, 최헌섭)감성돔을 ‘5대 돔’이라 하지요. 그 귀한 생선으로 식해를 담글 정도이면 조선시대에 진동 사람들이 잘 살았겠거니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동이 조선시대 귀양지라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진동에서 감성돔으로 식해를 담그게 되었느냐 하면, 많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진동 바다가 제 고향 바다입니다. 겨울 진동 바다는 ‘물 반 감생이 반’이었다는 말을 어린 시절에 어른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그 흔했던 감성돔을, 이제는 용왕님이 허락해주어야 겨우 얼굴이나 볼 수 있습니다. 2024.01.18 07:00
프로야구

'선진 시민'에서 '소금 선진'으로

삼성 라이온즈 오선진(33)이 '선진 시민'에서 '소금 선진'으로 거듭나고 있다. 오선진은 지난 3일 공로시민 표창장을 받았다. 한 달 전 상습 절도범을 잡아 신고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인이 차량에 둔 가방을 도난당하자, 그는 중고 거래 앱에서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찾아냈다. 구매 의사를 밝힌 후 판매자를 만나 가방의 출처를 추궁했다. 오선진은 도망가는 판매자를 잡아 경찰에 인계했다. 오선진은 "인생을 살면서 쉽게 받기 힘든 표창장을 받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상까지 주셔서 기분 좋다"며 웃었다. 이 선행이 알려진 뒤 그는 '선진 시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선진은 2008년 2차 4라운드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15년 차 내야수다. 하지만 규정타석을 채운 건 2012년과 2019년 두 번뿐이다. 나머지 시즌엔 주로 백업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6월 이성곤과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했다. 현재 삼성의 주전 유격수가 오선진이다. 옆구리 부상으로 4월 19일 전열에서 이탈했지만 5월 중순 복귀해 꾸준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시즌 실책은 6개. 그는 "어릴 적부터 수비에 욕심이 많다. 생각보다 실책이 많아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은 올해 초 이학주를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보냈다. 지난해 주전 유격수로 뛴 김지찬은 2루로 옮겨 공격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신인 이재현은 오선진이 빠진 사이 반짝 활약을 펼치다가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다. 이런 가운데 오선진이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며, 내야 중심을 지키고 있다. 오선진은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이 0.239(2455타석)에 그쳤다. 올 시즌에는 8일 기준으로 타율 0.286을 기록하고 있다. 장타율도 0.400로 높은 편이다. 그는 "지난해 삼성으로 옮겨와 데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도 치르고, 절도범도 잡았다. 또 표창장도 받았다"며 "(삼성이) 나와 잘 맞는 것 같다"고 쑥스럽게 말했다. 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연장 11회 초 선두 타자로 나와 행운의 내야 안타로 출루했다. 삼성은 연장 11회 3점을 보태 7-4로 이겼다. 오선진의 출루가 승리의 발판을 놓은 것이다. 8일 경기 역시 1-1로 동점이던 5회 초 선두타자 안타로 출루해 이해승의 적시타 때 결승 득점을 올렸다. 이런 활약으로 그에게 '소금 선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오선진은 "'소금 선진'이라는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든다. 소금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상습 절도범을 검거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야구 잘한다고 기사가 나와야지 왜 도둑을 잡아 뉴스가 됐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표창장 기사보다 야구를 잘한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형석 기자 2022.06.09 05:10
프로야구

[IS 이슈] '도루 1개' 오선진이 절도범을 잡은 비결은?

올 시즌 도루 1개만 기록한 오선진(33·삼성 라이온즈)은 어떻게 절도범을 잡았을까. 삼성 구단은 "지난 11일 오선진이 지인의 가방을 훔친 절도범을 잡았다. 해당 물건이 중고마켓 앱에서 거래 중인 걸 파악하고 오선진이 판매자를 직접 만났다. 도난 당한 가방과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출처를 추궁했더니 판매자가 당황하며 도망갔다. 오선진은 200m 정도 판매자를 추격해 잡아 경찰에 넘겼다"고 18일 밝혔다. 삼성 구단은 "오선진이 절도범을 잡아 경찰서에 인계했다. 조사 결과 가방은 오선진의 지인이 도난 당했던 그 가방이 맞았다. 판매자는 상습 절도범이었고,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이었다. 대구 경찰서는 범인 검거에 도움을 준 오선진에게 표창장을 수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오선진의 선행은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 원정경기를 치른 삼성 선수단에 큰 화제가 됐다. 당시 현장에는 이수민 등 삼성 후배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추리력이 놀라웠다. 오선진의 지인은 자동차 안에 가방 두 개와 운동화 한 켤레를 도난 당했다. 문이 닫히지 않은 차량을 절도범이 노렸다고 한다. 오선진은 "범인이 왠지 중고 마켓에 가방을 팔려고 할 것 같아서 검색해 봤다. 역시 도난 당한 지역에 물건을 올렸더라"면서 "가방 하나와 운동화는 이미 팔았고, 남은 가방을 내게 팔려다가 잡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선진은 판매자에게 거래를 제안한 뒤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기다렸다. 도난 당한 가방인 걸 확인한 뒤 판매자에게 가방의 출처를 캐물었다. 놀란 절도범이 달아났고, 오선진이 재빨리 그를 추격해 주차된 자동차들 사이에서 잡아냈다. 이때 이수민은 경찰에 신고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허삼영 삼성 감독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 정의의 사도 같다"며 "그런데 (오)선진이가 그 정도 주력은 아닌데….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으면 더 빨라지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백업 내야수 오선진은 2008년부터 한화에서 뛰다 지난해 6월 삼성으로 트레이됐다. 올 시즌에는 1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8 1홈런 6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도루는 1개뿐이고, 15년 통산 도루도 46개뿐이다. 오선진은 "사실 판매자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도망가다가 슬리퍼가 벗겨지더라"라고 쑥스럽게 말했다. 잡고 보니 절도범은 19세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오선진은 지난달 19일 옆구리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가 지난 15일 1군에 복귀했다. 돌아오자마자 선행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오선진은 "범인을 잡을 때처럼 열심히 뛰어야겠다. 시즌 초반처럼 소금 같은 활약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 큰 욕심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일단 소금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대전=김식 기자 2022.05.18 21:28
경제

SK그룹, 창립 60주년 기념식 개최

재계서열 3위의 SK그룹이 창립60주년을 맞아 창립기념식을 개최한다. SK그룹은 8일 오전 경기도 용인 SK아카데미에서 그룹 대표인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등과 최신원 SKC 회장, 최재원 SK㈜ 부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등 최종건 창업주와 최종현 회장 가족, 옛 선경직물 퇴직자 모임인 유선회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6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고 7일 밝혔다. SK그룹은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이 1953년 4월 8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수원시 권선구 평동 4번지를 매입, 선경직물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최 창업주는 당시 자신의 마차를 이용해 5㎞ 떨어진 광교천에서 돌과 자갈을 날라 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1962년 11월 10여 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친 최종현 회장이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형제경영의 틀을 구축했다. 에너지·정보통신 양날개로 도약1973년 최종건 회장이 작고하면서 선경그룹을 이어받은 고 최종현 회장은 1974년 석유파동을 겪으며 두 가지 목표를 정했다. 하나는 석유로부터 섬유에 이르는 산업의 수직계열화를 확립시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국제적 기업으로서 손색없는 경영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73년 선경석유를 설립해 석유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지만, 1차 석유파동으로 좌절을 겪었다. 이후 1980년 민영화에 나선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그룹의 오랜 숙원이었던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또 석유파동을 겪어봤던 최종현 회장은 자체적으로 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국가 차원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82년 '자원기획실'을 만들고 무자원 산유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석유개발에 나선다. 이때부터 시작된 SK는 전 세계 16개국, 29개 광구에서 석유 탐사 및 개발과 생산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25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인 5억1000만 배럴의 지분원유 매장량을 확보했다. 1980년대 들어 정보통신의 중요성에 눈을 뜬 최종현 회장은 1984년 미주 경영기획실을 설립해 정보통신사업을 준비한 뒤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얻어 최종 허가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일부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일자 사업권을 과감히 반납하고 1994년 민영화 대상이었던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4271억 원이라는 인수자금을 들여 인수해 에너지와 정보통신이라는 현재 SK그룹의 양날개를 완성했다. 1962년 섬유업계 최초로 4만6000달러 규모의 인조견을 홍콩에 수출하면서 섬유수출시대를 연 SK그룹은 1976년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한 후 2004년 100억 달러, 2005년 200억 달러, 작년에는 600억 달러 수출을 돌파했으며, 지난해 매출 158조원에 8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재계 서열 3위(자산규모 기준)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인재개발·사회적기업 양성에 적극 나서SK그룹은 국내 기업중 한국적 경영시스템 구축과 인재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종현 회장은 1975년부터 한국적인 경영시스템 개발에 나서 1979년 SKMS(선경경영관리체계)를 완성했다. SKMS의 핵심은 '사람을 활용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SK가 정한 목표는 인간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최상의 수준(Super Excellent 수준)'이며 이는 선진기업의 목표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올해는 국내 최초의 고등학생 대상 퀴즈프로그램인 '장학퀴즈'가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인재보국에 대한 관심은 동반성장과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2005년 신로고 '행복날개'로 기업의 이미지를 일신하고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해 '행복동반자 경영'을 본격화했다. 2006년 사회공헌 전문재단 행복나눔재단을, 2009년에는 SK미소금융재단을 설립하고 저소득층의 금융지원사업을 시작했다. SK그룹이 최근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사회적 기업의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한 활동이다. 국내 최초의 사회적 기업 MBA개설, 사회적 기업 지원 등을 하면서 사회적 기업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동반성장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창립 60주년에 맞춰 발간된 ‘SK 60년史’를 통해 “지난 60년은 국민의 의(衣)생활을 바꿔왔고 산업화 시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에너지를 만들어 왔으며 IT강국 대한민국을 선도해왔다"며 "앞으로의 명제는 행복과 글로벌라이제이션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형구 기자 ninelee@joongang.co.kr 2013.04.0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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